무기체계

Rolls-Royce

빛나는 전구 2024. 4. 21. 23:08

 

자동차 수입판매업자 찰스 롤스(Rolls)와 유능한 엔지니어였던 헨리 로이스(Royce)가 만나서 1906년에 롤스로이스 유한회사(Rolls-Royce Limited)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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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롤스(Charles Rolls)는 영국의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찰스 롤스의 아버지는 초대 남작이며 어머니도 모르바렌 남작 가문의 9대 자제였다. (대충 귀한 집 자녀였다는 말)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17세에 캐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컬리지에 진학하여 기계학과 응용과학을 공부하였다. 1903년 1월에 아버지의 도움으로 영국 최초의 자동차 판매점인 롤스 앤코(Rolls & Co.)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프랑스와 벨기에로부터 고급 자동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였다.

 

반면, 헨리 로이스는 제분소를 하는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마저도 영국의 농업 불황으로 제분소가 망하면서 로이스의 가족은 런던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나이 9살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그는 신문을 팔러 다니는 등 정규교육은 1년 밖에 받지 못한 채 생계를 뛰어야만 했다. 이후 다양한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업을 했다. 그러면서 틈틈히 수학과 공학을 공부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야심차게 시작한 발전기 및 전동 장비 제작 사업에 위기가 찾아오자 사업의 방향을 바꿀 궁리를 하던 중 자동차 엔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로이스는 1901년에는 De Dion 자동차를, 1902년과 그 다음 해에는 Decauville 자동차를 프랑스에서 구입하였으나 두 차량 모두 로이스가 만족할만큼의 성능을 보여주지 않자 본인이 직접 자동차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1904년에 로이스는 총 3대의 자동차를 만들었고 그 중 한 대를 전기부품회사를 함께 설립했던 친구인 헨리 에드먼드에게 줬다. 그리고 헨리 에드먼드는 로이스에게 롤스를 소개시켜 주면서 둘의 만남이 성사된다. 이는 에드먼드가 영국 자동차 클럽에서 만난 롤스에게 자신이 이번에 아주 좋은 차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롤스에게 이를 보여주고 싶다고 연락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이때 롤스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영국인이 만든 자동차라는 말에 솔깃한다. 왜냐하면 자동차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사업을 하던 그에게 영국 내에서 고급 자동차를 제작할 수 있다면, 바다를 건너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 등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0년 7월 12일, 롤스가 본머스 국제 비행 대회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32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 [1]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는지 1911년, 로이스는 소화 기관 질환이 재발하여 현장에서 업무를 수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프랑스 시골로 요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일 중독자였던 로이스는 그곳에서도 기술 개발과 엔진 설계에 매진했고 오늘날 롤스로이스를 상징하는 파르테논 모양의 시그니처 그릴도 이때 탄생했다.

 

한편, 걸핏하면 추락하기 일쑤였던 비행기는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여 전쟁에 투입되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롤스로이스에 항공기용 엔진 개발을 요청했고, 그 결과 1915년에 롤스로이스의 첫 항공 엔진인 ‘이글 엔진’이 탄생했다.

 

1931년 롤스로이스는 대공황의 여파로 무너진 영국의 최고급 수동 자동차 제조사인 ‘벤틀리’를 인수하여 1997년까지 ‘롤스로이스-벤틀리’ 그룹으로 불리게 된다. 이때 벤틀리는 모기업인 롤스로이스의 그늘에 가려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차량을 만들지 못했다. 특징을 언급하자면, 롤스로이스는 운전수에게 자주 운전을 맡기는 '쇼퍼 드리븐(Chauffeur-driven)' 성향이 강하다면 벤틀리는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오너 드리븐(Owner-driven)' 성격이 강하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데 롤스로이스가 갑의 위치에 있다보니 벤틀리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철학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1939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항공엔진 및 군수생산에 집중한다. 이때 미국의 P-51 머스탱(mustang), 영국의 스핏파이어(spitfire)의 심장을 맡은 걸작 ‘멀린(Merlin)’ 엔진이 탄생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롤스로이스의 자동차와 항공엔진 사업 모두 크게 성장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영국의 항공산업 경영합리화에 따라 1966년에 브리스톨 시들리(Bristol Siddeley)를 합병한다. 이후 브리스톨 산하의 필턴 공장이 군용엔진 전문생산공장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되던 엔진이 바로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에 탑재되는 올림푸스 엔진이었다.

 

이후로도 승승장구하던 롤스로이스 항공사업은 1970년대 록히드의 L-1011 여객기에 납품할 목적으로 야심차게 개발에 착수한 RB.211 엔진이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 결과 1971년 2월 4일, 롤스로이스는 법정관리 상태에 빠진다. 결국, 영국의 항공산업 붕괴를 우려한 영국 정부는 롤스로이스 국유화를 결정한다.[3]

 

1973년에 영국 정부는 롤스로이스 유한회사의 자동차 부문을 빅커스(Vickers)에 매각하여 앞에서 언급된 롤스로이스-벤틀리 그룹은 ‘롤스로이스 모터스’가 되어 1998년까지 빅커스 아래에 있게 된다. 한편, 국방에 중요하다고 판단된 항공기용 엔진 제조 부문은 국영기업으로 남게 된다. 분리 민영화가 된 셈이다.

 

그러나 1987년에 마가릿 대처 내각[4]의 민영화 조치로 롤스로이스는 ‘Rolls-Royce plc[5]’라는 이름으로 주식 시장에 복귀한다. 시장에 복귀한 롤스로이스는 1989년에 RB.211 엔진을 개량하여 항공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롤스로이스 트렌트 엔진을 출시한다. 그리고 트렌트 엔진을 통해 1987년에 점유율 8%에 불과하였던 롤스로이스는 현재 시장 점유율 40%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공한다.

 

롤스로이스 항공엔진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민영화가 되었을 무렵, 이번에는 자동차 부문이 위기에 처한다. 빅커스가 1998년에 롤스로이스 모터스를 BMW와 폭스바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8년에 빅커스는 롤스로이스 & 벤틀리 자동차 부문을 매각하려고 할 때 BMW를 우선협상 자격자로 선정하였다. 당시 독일의 BMW는 롤스로이스에 엔진 및 각종 부품을 납품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입찰에 참여한 폭스바겐이 BMW가 제시한 금액보다 9천만 파운드 높은 4억 3천만 파운드를 제시하면서 순탄하게 흘러갈 수 있었던 BMW의 롤스로이스 인수전에 차질이 생겼다.

 

롤스로이스를 포기할 수 없었던 BMW가 이에 대응하고자 재빠르게 롤스로이스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롤스로이스 항공으로부터 상표권을 사들인 것이다. (이때 롤스로이스 상표권을 갖고 있었던 롤스로이스 항공이 상당한 이득을 본다.) 그리고 빅커스 또한 폭스바겐과 상의하지 않고 BMW에 회사명과 로고 라이선스를 부여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폭스바겐은 롤스로이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환희의 여신상'과 '파르테논 신전 그릴' 그리고 공장까지 보유하고 있음에도 롤스로이스 상표권이 없어 롤스로이스를 판매할 수 없는 웃픈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반대로, BMW는 롤스로이스를 판매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동차를 폭스바겐이 가지고 있으니 두 회사 모두 롤스로이스를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BMW는 폭스바겐에 4천만 파운드를 지불하며 양해를 구하고 폭스바겐 역시 자신들은 벤틀리만 인수하면 된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BMW가 롤스로이스 엔진을 공급하고, 폭스바겐은 한시적으로 롤스로이스 상표를 사용하되, 2003년부터는 BMW 그룹이 롤스로이스 상표를, 폭스바겐 그룹이 벤틀리 상표를 독점 사용하여 자동차를 제조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큰 혼란 이후 롤스로이스는 인수합병에 집중하며 몸집을 키운다. 예를 들어 1994년에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 산하 가스터빈 엔진회사인 Allison을 인수하여 북미법인으로 재편했다. 1999년에는 과거 자신들의 자동차 부문을 인수했던 빅커스를 인수하면서 되려 빅커스가 롤스로이스 plc의 자회사가 되었다.

 

참고자료

시나브로, 롤스로이스 (영어 : Rolls-Royce) 1편

모터그래프, 복잡한 자동차 브랜드 조직도... 이 브랜드는 누구 것?

카스탯 「알아볼CAR? - (16)롤스로이스」

삼성화재 모빌리티뮤지엄, 「롤스로이스의 창업자, 롤스와 로이스[Charles Rolls and Henry Royce]

[큐리오시티] 롤스 로이스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조 명가, 롤스로이스(Rolls-Royce)의 역사와 주요 엔진


[1] 동시에 그는 영국인 최초의 항공 사고 사망자로 기록되었다.

[2] 1930년에 로이스는 평생의 공로를 인정 받아 대영제국 남작 지위를 받고, 193342270세의 나이에 저택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죽기 전날마저 작은 종이에 자동차용 충격 흡수 장치를 스케치했고, 이를 회사에 전해줄 것을 당부할 정도로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3] 1976년에 영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구(IMF)의 금융지원을 받는다. 여기에 영향을 준 것이 영국 정부의 무리한 롤스로이스 국영화였다.

[4] 1979년에 '철의 여인'이라 불리게 되는 마가릿 대처 총리가 집권에 성공한다. 드디어 노동당 정권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보수당이 집권하게 된 것이다.

[5] Public Limited Company, 공개유한회사를 의미한다.